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& 메리 대학교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[[파일:external/www.wm.edu/dl_ps4.jpg|width=500]] 2012년 10월 윌리엄 & 메리를 방문한 [[달라이 라마]] 1776년 [[미국 독립 전쟁]] 이전에 세워진 9개의 [[콜로니얼 칼리지]] 중에서 [[럿거스 대학교]]와 함께 유이하게 아이비리그가 아닌 학교다. 학교 이름은 설립 당시 윤허장을 발급해준 영국 국왕 [[윌리엄 3세]]와 [[메리 2세]]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. 남북전쟁 당시 하버드는 북부 [[미국|미합중국]]의 학자들을 모았던 반면 윌리엄 & 메리는 노예제를 지지했던 남부 [[아메리카 연합국|미연합국]] 학자들의 집합지가 되었다. 해당 대학이 위치한 [[버지니아주]] 윌리엄스버그 시는 [[남북전쟁]] 당시 [[아메리카 연합국|남부연합]]에 속했으며, 미연합국 수도였던 [[버지니아주]] [[리치먼드(버지니아)|리치먼드 시]]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. 그래서인지 1836~1846년에 대학 총장이었던 토머스 R. 듀를 비롯한 여러 학내 인사가 [[노예]]제 찬성론자였고, 많은 학생과 교직원이 남부연합의 편에 서서 싸우다가 전사하며, 교정은 전쟁 중 격전지가 된다. 이에 따라 대학은 1861년 5월 10일부터 운영이 잠정 중단되어 처음에는 군병원으로 사용되었고, 한 건물은 북부군의 점령 후 사령관 집무실로 사용되다가 1862년 9월 9일 술 취한 북부 병사들에 의한 '''방화'''로 파괴되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. 전쟁 후 남부(미연합국)의 패배로 윌리엄 & 메리 또한 몰락 하게 된다. 결국 종전 4년 후, 1869년 16대 총장 벤자민 에웰의 사비로 대학은 복구되지만 재정 상의 어려움에 의해 1881년에 다시 폐교됐다가 1888년 [[주립대학]]으로 재개교한다. [[도시전설]]에 따르면 벤자민 에웰은 대학의 운영이 중단된 동안에도 아침마다 일어나서 등교 시간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고 한다. 그리하여 [[콜로니얼 칼리지]] 중 하나인데도 후에 동북부에 모여있는 사립대학들의 모임, [[아이비 리그]]에 속하지 못하게 된다. --학교 근처 사용되지 않고있는 빌딩에서 흑인 노예들을 상대로한 생체실험이 있었다고 한다-- 그러나 1985년에 공대, 의대 없이도 [[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]], [[미시간 대학교]], [[버지니아 대학교]] 등과 함께 퍼블릭 아이비(Public Ivy)로 선정되었다. (리처드 몰의 오리지널 에잇, Original Eight Public Ivies). [[US News]] 기준 전미 주립대 랭킹 6위(2015) 이며, Forbes 기준 전미 주립대 랭킹 5위(Top 25 Public Colleges 2016)이다. 1930년에 세워진 [[버지니아 비치-노퍽-뉴포트 뉴스|노퍽]] 분교는 1962년 독립해서 버지니아의 또다른 [[주립대학]]인 [[올드 도미니언 대학교]]가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